정부, 항만 안전관리 강화 목표
항만운송사업법 개정 추진 중
“대기업 진출 땐 영세업체 폐업”
부산항만산업협회 등 업계 반발
정부가 항만종합서비스업 신설을 추진하자 부산항을 지켜온 화물고정업 등 항만연관산업 업계가 반발한다.
부산항에서 컨테이너 화물을 고정하는 노동자들. 부산일보DB
컨테이너 등 화물을 선박에 고정하고 해체하는 화물고정 작업(래싱)은 항만 하역의 처음이자 끝이다. 전자동화 항만에서도 기계로 대체될 수 없는 업무이기도 하다.
화물고정업을 비롯해 부산항을 지켜온 부산 지역 항만연관산업 업체들이 최근 시름에 빠졌다.
정부가 항만안전 관리와 업무 효율화를 명분으로 항만종합서비스업 신설을 추진하자 지역의 항만연관산업 업체들이 대기업 진입에 따른 줄도산과 지역경제 황폐화를 우려하고 있다. 기존 업체들은 자구책을 마련하는 한편 정부에 정책적인 지원을 요구한다.
(사)부산항만산업협회와 해양수산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하역 사업자가 화물고정, 줄잡이, 컨테이너 수리 등 다양한 항만 서비스업 종사자의 안전관리를 위해 관련 업종과 일괄 계약할 수 있도록 항만종합서비스업을 신설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항만운송사업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항만운송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지난 3월 23일 상임위, 지난 16일 법사위를 통과하고 본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과 항만안전특별법 시행에 따라 항만 안전관리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법 개정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선사와 하역 사업자, 다양한 항만 서비스 업체들이 개별 계약을 하는 기존 방식을 체계화할 필요도 있었다.
문제는 부산항 항만연관산업이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있어 항만종합서비스업으로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부산항만산업협회에 따르면 협회 소속 29개 화물고정업 등 기업의 지난해 매출은 평균 67억 원 규모로, 100억 원을 넘는 기업은 5곳에 그친다. 게다가 협회가 항운노조와 독점 노무공급을 맺는 구조 때문에 노임이 매출의 95%를 차지해 적자 운영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역의 항만용역업계는 대기업인 터미널 운영사(하역 사업자)가 직간접적으로 항만종합서비스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기존 업체는 대기업의 하청 업체로 전락해 채산성은 더욱 악화되고, 하청을 받지 못한 다수 업체는 결국 폐업 위기에 몰려 지방경제가 피폐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외국적 선사나 외국계 터미널 운영사에 국부가 유출되는 상황도 우려한다.
부산항만산업협회는 동반성장위원회에 화물고정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 진입을 제한해달라고 신청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항만종합서비스업의 요건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채용하는 한편 협회 단위로는 소속 기업들이 일종의 지주회사 형태로 조합을 꾸려 항만종합서비스업을 운영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보다 강화된 항만 안전관리 대책도 수립할 계획이다.
부산항만산업협회 최만기 회장은 “공청회 한 번 없이 일방적으로 법 개정을 밀어부치는 탁상행정으로 수십년간 부산항을 피와 땀으로 발전시켜온 항만연관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면서 “정부는 시행세칙 개선과 유예 기간 등을 통해 제도를 보완하고 지역의 항만연관산업이 지속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해양수산부 항만운영과 관계자는 “개정안에 국가나 지자체가 관련 업종에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된 만큼 업계 건의 사항이 있다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